숲
그리고
숲
25신진작가 동시대 연구기획전 김예원 & 원지영 2인전 2025.3.4 – 5.7
안국문화재단은 매년 신진작가공모전인 ‘AG신진작가대상’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작가들에게 다양한 기획전으로 전시기회 제공을 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 신진작가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숲의 조각을 근접한 거리에서 파편들처럼 보여주고 있는 김예원 작가와 상상의 식물들처럼 혹은 원초적인 원시림을 색이 절제된 흑연으로만 표현하고 있는 원지영 작가의 서로 다른 정서와 느낌으로 숲이 표현될 수 있음을 소개한다.
‘숲 그리고 숲’ (전시 주제 선정에 대하여)
김예원, 원지영 두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서로의 작품과 작업 노트를 바탕으로 각자의 작품세계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이를 통해 이번 전시의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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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영 안녕하세요. 김예원 작가님! 저는 이번 전시를 함께 하게 된 원지영입니다. 아래는 저의 작업 노트입니다.
2013년 가족의 죽음, 죽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한 줌의 재, 보잘것 없는 인간의 존재...더 이상 주인이 없는 빈 집과 빈 땅을 바라보며 시간과 공간이 멈춘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간은 무수히 많은 풀과 식물로 울창해졌고 공간 안에서 자연은 스스로 자생했다. 봄이 오니 싹이 나오고 곧 열매를 맺었고, 겨울이 되니 열매와 잎이 떨어지고 시들어 죽었다. 해가 지나서 봄이 오면 자연은 다시 살아났고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자연은 다시 시들고 죽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생명들은 지금도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처럼 순환하는 자연의 풍경을 보면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 역시 수많은 생명들 중의 하나로 생과 사가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연의 풍경은 인간의 죽음을 성찰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삶과 죽음을 형상화하는 주요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저의 작업은 흑연이 가득 채워진 공간에서 시작됩니다. 흑연으로 뒤덮인 암흑 같은 공간에서 지우개가 지나간 자리는 형상으로 가시화 됩니다. 지우는 행위는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양의 공간을 만듭니다. 이 때문에 작업 과정은 지우면 그려지고, 그리면 지워지는, 그리기와 지우기의 역할이 서로 교차되고 반복됩니다. 마치 삶과 죽음처럼 말이죠.
김예원 안녕하세요. 원지영 작가님! 작가님의 작품에 관한 글을 읽고 작품을 바라보니 표현의 섬세함과 깊이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특히 지워짐과 동시에 생성되는 표현 방식이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 같아서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도 작가님과 마찬가지로 자연, 주로 숲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저의 작업 노트입니다.
도시의 견고함 사이로 기어이 비집고 나오는 풀들, 그 풀들로부터 이어지는 본래 숲이 있던 곳의 흔적을 좇으면 경계선 너머에 숲이 있다. 그 주위를 지나며 바라본 숲의 사계에는 머물고 흩어지는 것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한없이 자유롭고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황량하고 때로는 황홀한 그곳에 시선이 머물면 그 숲의 조각들을 담아와 나만의 숲을 그린다. 때로는 자유롭고 때로는 망설이고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다시 설레며 그렇게 그림을 그린다. 내가 바라본 그 반짝이는 숲의 울림처럼 나의 그림이 누군가의 시선에 닿아 마음에 남길 바라며 그림을 그린다.
저는 작업 노트에 썼듯이 주로 숲에서 영감을 받아 그 조각의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숲처럼 자유롭고 조화롭게 잘 펼쳐 놓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그려나가다 보면 언젠가 제가 바라본 그 숲의 울림처럼 저의 그림도 누군가에게 작은 영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 나갑니다.
원지영 아 그러시군요.
저희 둘 다 자연, 숲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군요. 하지만 숲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과 표현이 흥미롭네요. 그래서 저는 관점, 시선, 태도, 사유를 키워드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예원 저도 작가님과 저의 작품이 숲을 바라보는 시작 지점과 표현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한눈에 보기에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지만 둘 다 숲을 소재로 작업하였고 숲으로 대변되는 자연을 통한 사유와 성찰의 과정을 거쳐 각자 내면화된 숲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아우를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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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의견 교환 과정과 추가적인 대화를 거쳐 김예원과 원지영은 이번 전시의 주제를 ‘숲 그리고 숲’으로 정하였습니다. 여기에서의 숲은 처음 두 작가에게 영감을 준 시작의 숲과 각자의 내면화를 거쳐 작품으로 탄생한 또 하나의 숲을 의미하기도 하고 동시에 두 작가가 서로 다른 회화적 언어로 펼쳐낸 각자의 사유(思惟)의 숲을 의미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