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공간:ThinkSpace》 - 무한한 변화와 몰입의 영역에서
A Space of Constant Change and Artistic Immersion
‘생각’은 더 이상 고정된 주체의 내부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맥락들-공간, 사물, 언어, 사회적 구조와의 복합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탈중심화된 형태로 작동한다. 생각의 배경에는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공간'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배경이기보다는 감각과 지각의 구조를 통해 인식 주체와 세계를 매개하는 현상학적 장이다. 인간의 사유는 이러한 공간적 체험 속에서 비로소 형상화되며, 그 경험은 감각적 인식, 기억, 정동(Affect)에 따라 복합적으로 구성된다. 예술적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은 고정된 결과나 해답에 이르기보다는, 열린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자리를 찾고 이동하며 새로운 관계를 생성한다. 이에 본 전시는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을 사유의 영역으로 전환하며, 비일상적 환경에서 생성되는 사고의 역동성과 몰입을 조명한다.
《생각공간:ThinkSpace》는 미술관을 사유의 방으로 제안하며 비(非)일상의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창조적 사고에 대해 주목하고, 정형화된 관념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공간’이란‘모든 방향으로 무한하게 퍼져있는 곳’으로 이는 아직 개인적인 경험이 투영되지 않은 상태로서 활동과 변화의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간은 추상적일 수도, 광활한 미완(未完)의 형태일 수도, 자유와 개방을 통해 다채로운 몰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곳이 된다. 이렇게 본 전시는 사물의 본질과 일상 속 추상을 통해 생각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적인 몰입을 견지하는 동시대 작가 변상환, 안상훈, 이병호, 지희킴, 차승언을 소개한다. 전시에 참여하는 5명의 작가는 개인의 의도와 우연, 그것들의 경계와 가능성 그 너머의 생각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며, 각기 다른 몰입의 무한한 변주 가능성을 보여준다. 곧 이번 전시는‘생각’하는 행위가 소모적인 부분을 넘어 완연한 해답을 찾기보다는 관점에 따른 생성과 재조명, 감각의 결합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변상환은 신체 개입을 동반한 적갈색의 추상 평면을 통해 3차원의 공간을 구현한다.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주변 환경 속 사물의 이면을 나열된 패턴으로 창출하며, 이를 공간으로써 확장하는 작업에 집중한다. 판화지 속 평면적 결과물들은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연쇄적으로 나열되고, 결국 반복된 낱장의 궤적들은 무중력 공간 속에 입체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 시도는 작가의 투신이 개입된 운동성, 형강을 들어 올리는 힘, 철저하게 계산된 이동 거리와 방향의 각도, 형강의 무게에 버금가는 누름쇠의 무게 등 물리적 행위의 과정이 집적된 결과물이다. 변상환의 '몸짓'에서 만들어진 예술적 행위는 결국 시간과 몸이라는 주제의 의미를 담지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조형 언어를 넘어서 심리적 몰입을 유도한다. 이처럼 변상환의 작업은 공간을 다루되, 그것을 단지 물리적인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주체적 몸의 기록’을 연쇄적인 풍경으로 전환한다. 결국 작업에는 반복된 운동 속에 담긴 작가의 의지와 노동의 가치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이 모든 행위의 집적은 평면이라는 한계를 돌파하려는 작가의 실천적 저항의 결과이자 예술가의 집념이 내포된다.
안상훈은 회화적 구상과 추상의 구분, 단편적 해석과 사실주의적 재현의 의미에서 벗어나 ‘그리기’라는 가장 본질적인 행위에 주목한다. 그의 회화는 분사되어 흐르고, 덮이고, 지워지기도 하며 불명확한 형상으로 거듭하는 동시에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과정은 작가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그의 스마트폰 속 ‘최근 삭제된 항목’에 놓인 이미지들은 재현으로 시작해‘ 안상훈적 회화의 행위’를 통해 본래의 형상과 질감에서 벗어나 기존의 모습과 의미에서 어긋난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러한 의도적 어긋남은 어떠한 맥락에서 보아도 열린 가능성을 잠재하여 방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연과 필연, 자극과 반응 사이를 넘나들며 결코 친숙하지도 이질적이지도 않은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그의 탐색은, 어느 순간부터 예술의 보편성 그리고 새로움과의 긴장 관계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며, 더 나아가 이미지의 기원과 그 생성 과정을 되묻게 만든다. 결국 안상훈의 회화는 단일한 정답이나 해석을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열린 결말을 통해 관람자의 감각을 능동적으로 호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병호는 유동적인 조각에 집중한다. 작업은 토르소(Torso) 형태와 같이 인체를 다양한 조각적 방법론 안에서 분리하고 조합하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일반적으로 ‘불필요하다’라고 간주하는 인체의 잔여 부위들조차 온전한 조형적 잠재성을 지닌 대상으로 바라보며, 인체 일부분의 복제, 재배치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서 새로운 일부를 축적한다. 그가 견지해 온 작업을 보면 '부분(part)'과 '복제(replication)'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포착된다. 작가의 복제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기존의 형태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행시키는 전략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왜곡, 심지어 훼손된 형태조차도 하나의 완결된 조형 언어로 수용한다. 결국, 작가가 말하는 ‘유동적인 조각’은 고정된 완성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생성되고 순환하는 유기적 존재로 이해된다. 이러한 조각적 세계는 고정된 의미를 거부한 채, 해석과 해체, 생성이 반복되는 끊임없는 순환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결국, 이병호의 조각은 그렇게, 하나의 닫힌 형태가 아니라 끝없이 열려 있는 조형의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지희킴은 매체의 속성을 연구하고 실험을 동반하는 작업을 통해 사회에 만연하는 고정적 가치의 한계를 극복한다. 회화, 판화, 드로잉 등 다양한 시도로서 텍스트와 이미지를 재융합하고, 다채로운 회화적 표현으로 개인의 사유를 담는다. 그의 회화에서 등장하는 책과 정원은 사회적 통제에 대한 반란과 저항의 공간이다. ‘북 드로잉 프로젝트’는 영국 유학 시절 읽을 수 없는 외국어 텍스트를 이미지로 번역하며 시작되었으며, 버려진 책 위에 그려진 드로잉은 텍스트를 덮고 해체하면서 이성의 언어를 감성의 언어로 변형한다. 이러한 작업은 언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이미지와 언어의 교차를 통해 탈중심적 사유를 이끄는 작가의 시도이다. 또한, 기억 속에서 단절된 서사가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며, 고정된 질서와 경계를 넘어서는 열린 사고의 상태로 이끈다. 이렇게 지희킴의 회화는 언어와 이미지, 이성과 감성, 기억과 상상이 만나며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유도하는 실험적 예술의 실천이며, 그의 예술적 탐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차승언은 씨실과 날실이 만들어 내는 규칙적인 언어와 반복적인 구조 속에서 직조 회화를 탐구한다. 작가는 캔버스가 본래 지닌 직물의 물성에 주목하며, 그 구조 자체를 회화의 본질적인 요소로 삼는다. 작가에게 직조 회화란 단지 이미지를 구현하는 회화의 한 방식이 아니라, 회화와 설치,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조형 언어이자, 공간적 경험을 형성하는 장이다. 차승언의 직조는 더 이상 평면에 머물지 않고, 관람자가 감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물리적 형태로 변환된다. 작업의 핵심은 바로 ‘규칙’이다. 씨실과 날실이 만들어 내는 반복적인 엮임의 규칙은 이진법과 같은 디지털의 구조와 유사하며, 이는 작가가 컴퓨터와 직조 행위 사이에서 추구하는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차승언은 이 규칙이 패턴의 형식으로 시각화되는 지점에 주목하며, 그 형상이 관객과의 감각적 교감을 일으키는 중요한 전환점을 형성한다고 본다. 비로소 작가의 시각적 규칙이 만들어 내는 반복과 패턴의 형상은 감각과 의미가 만나 교감하는 핵심적인 통로가 되어, 작품의 시각적, 감각적 경험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생각공간:ThinkSpace》는 무의식적으로 소비되는 ‘생각’의 기계적 흐름을 잠시 멈추고, 내면의 감각을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미술관을 제안한다. 5명의 참여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채로운 관념을 확장하며, 사유와 감각의 새로운 연결 지점을 탐색한다. 본 전시는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거쳐 만들어진 작업을 통해, 정해진 해답이 아닌 열린 질문과 조형적 사고의 변주를 시도하며, 감각의 전환을 유도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관람을 넘어, 공간을 사유하고 생각을 마주하는 적극적인 행위로서 관람자를 초대하며, 관람자는 정적인 감상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각기 다른 작품들이 생성하는 사고의 흐름과 장면 속에서 자신의 관점을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작동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공간:ThinkSpace》는 감각과 관념, 이미지와 언어, 직관과 논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각자가 가진 사유의 언어를 새롭게 발견하는 여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본 전시를 통해 미술관이 일상의 틈에서 열리는 비(非)일상의 방, 창조적 사고가 일어나는 실제적 공간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전시 개요>
전시기간 : 2025.5.1(목) - 6.21(토)
전시장소 : 우민아트센터 1, 2, 3 전시실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11-2월)
오전 10시 - 오후 7시 (3-10월)
매주 일요일, 설, 추석에는 휴관합니다.
참여작가 : 변상환, 안상훈, 이병호, 지희킴, 차승언
관람료 : 무료
주최 : 우민아트센터
후원 : 우민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