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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 전시 2020 GAP(Glassbox Artist Project)展

전시기간 2020-10-23~2020-11-14
전시장소 봉산문화회관 1,2,3전시실
전시장주소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77 봉산문화회관 지도보기
오픈시간 10:00~13:00, 14:00~17:00(월요일 휴관)
*사전예약제(053-661-3526,3517
관람료 무료
기관명 봉산문화회관
문의 053-661-3500
웹사이트 http://bongsanart.jung.daegu.kr/community/sub_0101.html?webpage=/community/sub_0101.html&board=bbs_3&case=view&page=1&num=782&search=&se_word=
후원 O

상세내용

봉산문화회관기획
2020 GAP展
안녕! 멀티미디어 리터러시 Hi! Multimedia Literacy

GAP전 이미지.jpg

  ■ 제    목 : 2020 GAP(Glassbox Artist Project)展
                     안녕! 멀티미디어 리터러시 Hi! Multimedia Literacy
  ■ 관람일정 : 2020. 10. 23(금) ~ 11. 14(토), 23일간, 월요일 전시 없음
  ■ 참여작가 : 권효정, 김안나, 홍희령(1전시실), 정세용(2전시실), 정혜련(3전시실)
  ■ 작가와 만남과 워크숍은 코로나19로 확산방지로 진행하지 않음
  ■ 관람시간 : 10:00~13:00 / 14:00~17:00 홈페이지 사전예약제로 운영함
  ■ 장  소 : 봉산문화회관 1~3전시실
  ■ 기  획 : 봉산문화회관(큐레이터 조동오)
  ■ 협력기획 : 김성호(미술평론가,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 문  의 : www.bongsanart.org  053-661-3500
        페이스북(bongsanart), 인스타그램(bongsanart_), 트위터(@bongsanart)

 


전시 소개
『2020 GAP展』
“GAP(갭)”은 ‘다름’과 ‘차이’를 상징하는 “유리상자-아트스타” 전시의 진일보한 프로젝트명 'GlassBox Artist Project'를 일컫는 명칭이다. ‘공간의 틈’, ‘시간적 여백’, ‘차이’, ‘공백’, ‘사이’의 의미를 내포한 GAP展은 유리상자로부터 비롯되지만 유리상자 작가의 성장과 변화 그리고 유리상자에서 구현할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을 조명하려는 전시이자 ‘다름’과 ‘차이’가 주제전을 통한 협력과 연대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기획전시이다.

 

유리상자 아티스트의 최근 면모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탄생한 GAP展은 2012년부터 매년 1회 전시하며 올해로 9번째를 맞게 되었다. 2020년 전시는 젊은 미술가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외부 협력기획자 김성호(미술평론,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를 초청하여 전시 주제에서부터 작가 선정에 관하여 다양하게 협의하며 지금까지 “유리상자-아트스타”를 통하여 소개되었던 74명의 작가 중 5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유리상자 전시 이후의 새로운 변화들을 선보이기 위한 GAP展을 추진하게 되었다. 김성호 협력기획자가 제안한 이번 전시의 주제는 “안녕! 멀티미디어 리터러시(Hi! Multimedia Literacy)”이다. 그는 멀티미디어(multimedia)라는 복합미디어 시대에서는 언어적(verbal)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논하였으며 미디어의 발전은 음향, 소음, 오감을 자극하는 4차원적인 요소까지 나타내며 이해하기 어려운 모호한 이미지들을 시각 코드 자체로 읽어내야만 하는 비언어적(non-verbal)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하였다. 그래서 시각예술에서 복합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차 높아지는 현실안에 ‘정보 이해 및 사용’을 의미하는 리터러시(literacy)의 중요성에 중점을 두며 전시를 준비하였다.
이번 전시의 구성은 1전시실에 권효정 작가(Channel or ego, 가변설치), 김안나 작가(Breath 숨, 영상), 홍희령 작가(장수제면소, 가변설치 및 체험)가 각기 다른 매체를 사용하며 관객들과 소통을 시도하고자 한다. 2전시실의 정세용 작가(Flying Machine, 가변설치)와 3전시실의 정혜련 작가(Treasure island, dnalsi erusaerT, 가변설치)가 빛을 통한 공간설치를 선보인다.

 

권효정 작가(2017 GLASSBOX ARTSTAR 권효정-Oasis: Fountain of life)는 “channel of ego”라는 제목으로 pvc파이프 조각들을 이어 붙이며 바닥 공간에 드로잉을 하듯이 수로를 설치하고 수중모터를 이용해 6개의 공(부유물)의 흐름을 보여주는 설치예술을 선보인다. 작가는 공들은 각기 다른 에고(Ego)로 물은 시간이자 곧 생명으로 인식한다. 물에 대한 탐구가 생명의 근원과 순환의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작가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테크놀로지(technology)까지 연구하는 집요함이 보인다. 사람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현재의 시간이라고 하지만 생명의 순환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며 유기적인 삶에 대해 복잡한 설명을 하려 하지만 물의 흐름, 곧 시간과 생명의 흐름을 통해 부유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아주 단순한 원리로 축약됨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고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안나 작가(2012 GLASSBOX ARTSTAR 김안나-Out/in the Universe)는 숨(BREATH)을 주제로 영상을 선보인다. 새소리, 물소리, 푸르름이 화면에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마냥 환상적인 아름다운 자연환경만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작품 ‘숨’은 현재 대기환경지수와 날씨 데이터에 따라 가상 환경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라이브 시뮬레이션 미디어 작품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현실로 체험하는 지금, 우리의 생명과 같은 숨(BREATH)도 환경재앙, 감염병, BLM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같은 사회적 갈등 등을 보며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성찰과 노력이 없이는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가상현실 세계에 다양한 이슈들을 수집, 편집, 선택하고 창조하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상상을 현실로 구조화시키며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화두를 던지며 소통하고자 한다.

 

홍희령 작가(2017 GLASSBOX ARTSTAR 홍희령-나는 모르는 일이오)는 국수를 만드는 <장수제면소>에서 일종의 수행과정(국수의 면을 뽑는)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관객참여 설치미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중 1위가 스트레스(stress)이라는 통계가 있듯 작가는 복잡한 사회구조와 과도한 업무 및 학업, 대인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대부분 속으로 삼키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밀가루 반죽에 시원한 ‘욕설’을 권한다. 작가는 관습적 사고와 관계 그리고 사이에 발생하는 의미를 끌어내는 개념적 설치작업을 수양의 과정(예술행위)을 통해 불편한 현실을 보다 직접적이며 유희적으로 변환시킨다. 그리고 일상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명료하게 실현시킴으로 이해의 간극없는 리터러시(literacy)를 관람객에게 전달한다.

 

정세용 작가(2008 GLASSBOX ARTSTAR 정세용-Flying Machine)는 2전시실의 암막을 열고 들어서면 새로운 시공간으로 들어서는 환영을 누리게 한다. 공간의 첫 자락은 위압감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비행기 격납고 같은 어두운 전시실에 쇠사슬로 양 귀퉁이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조형물 즉, 은 투과되는 빛을 뿜으며 관람객을 응시하며 위용함을 과시함으로 고요한 공간에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어두운 공간에 동공이 적응하듯 이내 빛의 패턴 속 새로운 시공간에 들어서게 하며 몽환적인 사색의 시간을 열어 준다. 작가는 발광체를 통해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전시장 안으로 소환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원초적인 사색을 유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공간은 저마다 우주가 될 수 있고 화려한 도심의 불빛도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경이감을 느끼며 숨죽이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혜련 작가(2014 GLASSBOX ARTSTAR 정혜련-Serial possibility)는 천고가 높은 3전시실에 들어서면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LED불빛의 선들이 공간 속에 자유롭고 리드미컬한 드로잉처럼 빛나고 있다. "보물섬, 섬물보” 어릴적 우리가 생각하는 소설 속 보물섬에도 꿈과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 속 우리의 삶에도 투영되는 욕심과 갈등 그리고 욕망을 쫓아가는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도 있었다. 작가는 보물섬에 나타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도시 속 삶의 공간으로 끄집어내어 장소나 지역의 특징적 레이어로 공간을 구획함으로 작가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대구, 그리고 봉산문화회관이란 전시장에서 구현되는 작가만의 레이어는 추상적이고 비언어적인 이지만 관객 각자의 경험의 지표에 따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유기적인 리터러시로 전달될 것이다.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이 우리에게 낯설고 어렵게 보이지만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삶 언저리에 녹아있다. 무심코 지나버린 풍경속에도, 스쳐버린 기억속에도 예술은 살아 숨쉰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5명의 작가들 모두 삶속에 존재하는 생의 경험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관객들에게 때론 모호하게, 혹은 직접적으로 다름과 차이의 리터러시를 표현해낸다. 삶은 ‘다름’과 ‘차이’에서 나오는 기억의 축적이며 이것이 GAP展의 의미이고 영역이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조동오

 


전시 평론


안녕! 멀티미디어 리터러시

 

프롤로그
멀티미디어(multimedia)의 시대가 된 지도 벌써 오래다. 미디어라는 용어도 이미 미디엄의 복수인데 멀티미디어를 통해 ‘복수의 복수’를 표방하는 시대라니! 이러한 복합미디어 시대에는 구어, 문어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던 언어적(verbal) 커뮤니케이션을 이제는 어렵게 만든다. 음향, 소음마저 끌어안고 이해하기 어려운 모호한 이미지들을 시각 코드 자체로 읽어내는 비언어적(non-verbal) 커뮤니케이션을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위시한 복합미디어가 주도하는 시각예술의 장에서 ‘정보 이해 및 사용’을 의미하는 리터러시(literacy)는 매우 주요하다.
여기 미디어아트의 장에서 각자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멀티미디어 리터러시(multimedia literacy)’의 화두를 고민해 왔던 참여 작가들이 있다. 때로는 어떻게 건조한 하이테크놀로지 안에 따뜻한 메시지를 담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때로는 어떻게 창작을 해야 불특정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온전하게 읽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이들의 작품에서 리터러시와 관련한 관심사는 무엇일까? 우리 모두 “안녕”이라는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홍희령, 권효정, 정혜련, 정세용, 김안나 5인의 작품을 천천히 둘러보자.

 

1. 권효정 - 삶에 관한 은유의 리터러시
작가 권효정의 출품작 는 로우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기계 미디어의 장에서 삶의 내러티브를 빗대는 은유의 리터러시를 전개한다.
전시장 기둥을 가운데 두고 ㄱㄴㅡ 모양의 PVC 파이프로 둘러 만든 거대한 수로 위에는 반투명 고무, 스티로폼, 흰색과 검은색 우레탄,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크기가 다양한 공들이 수중 모터 장치를 통해 만들어진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수로 위에서, 공들이 자신의 길을 가면서도 크기와 무게가 다른 공들이 반응하는 속도가 달라 좁은 수로 위에서 서로의 몸을 부딪치기도 한다.
어떠한가? 이 작품은 인종, 성별, 연령이 다른 인간 주체들이 살아가는 인간 현실계를 닮아있지 않은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삶을 지속하고 있지만 종국에 모든 인간 주체들이 지속하는 ‘삶으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흐름’은 그녀가 만든 수로와 같은 것이리라. 아울러 그 속에서 흘러가는 각기 다른 성질의 공들은, 처음과 끝이 이어진 수로 속 여행을 떠난 ‘돌의 순환(rock cycle)’과 같은 다양한 인간 삶을 은유한다. 그런 면에서 순환하는 수로와 그곳을 부유하는 여러 공은 ‘나/우리’의 인생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 간주될 만한 메타포라 할 것이다.
권효정이 만든 거대한 기계적 운동체는 우리에게 ‘인간의 삶 속 시간’인 지속(durée)의 철학적 개념을 성찰하게 만든다. 베르그송(H. Bergson)의 이 개념은 추상적, 과학적, 수학적 시간과는 다른 인생의 시간이다. 이것은 공간과 시간이 완전히 섞여 있는 '순수한 시간(durée prurifiée)'이자, 구분이 불가능하고 측량이 불가능한 시간이자 과거로 돌이킬 수 없고 끝없이 미래로만 흘러가는 비가역적(irréversible) 시간이다. 이곳에서는 언제나 다양하고 이질적인 새로운 사건들로 가득하다. 이 공이 저 공과 부딪히고 수로 밖으로 튕겨 나가기도 하고, 때론 수로가 오작동하는 일련의 사건을 만나 운동체의 시간을 멈추기도 하니까 말이다.
특히 우리는 권효정의 출품작 제목이 임을 유념할 일이다. 현실계의 인간 주체의 삶을 은유하는 그녀의 거대한 기계적 운동체는 실상 에고(ego)의 은유임을 명확히 한 셈이다. ‘나’라는 주체는 프로이트의 관점으로 보면, ‘이드(id)’와 ‘슈퍼에고(superego)’라는 본능과 초자아 사이에서 둘을 끊임없이 중재하다 생채기를 남기는 ‘에고’의 존재라 할 것이다. 사회적 맥락(context)과 타자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존재일지라도 ‘나’라는 에고는 결국 연민할 수밖에 없는 삶의 주체다.
예술가로 살고 있는 권효정의 에고란 이러한 움직이는 운동체로 은유되는 존재다. 부딪히는 공들의 모습은 ‘삶 속의 유기적 관계들’을 은유하기도 하지만 예술가 자신 안의 ‘머릿속 생각’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단순한 구조 속에서 순환하는 수로는 한계를 지닌 현실계를 은유하지만, 그 속에서 운동을 지속하는 자유로운 물의 흐름은 세계를 대면하는 예술가의 유연하고도 자유로운 사고를 은유한다. 그것은 자유롭지만 선명하지 않은 무엇이다. 벽면 한쪽에 트레싱지와 필름지 위에 매직으로 그린 6점의 연작은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부유하는 공’의 모습을 자유롭게 풀어 놓는다. 그곳에는 자유롭지만 블러 처리를 한 듯한 불투명한 이미지가 살포시 떠오른다.
작가 권효정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죽음의 미래를 공유하는 모든 인간 주체의 다양한 현실적 삶을 은유한다. 이처럼 그녀가 담는 은유로서의 리터러시는 관객에게 타자와 주체, 한계를 지닌 현실계의 맥락과 예술처럼 자유로운 인간 사유가 무엇인지를 성찰해 보는 시간을 선사하기에 족하다.

 

2. 김안나 - 가상현실의 경계와 바이탈 미디어 리터러시
작가 김안나는 작품 〈Breath 숨 息〉에서 현실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받아 가상현실을 구축하면서 소중한 생명에 관한 리터러시를 펼친다. 가히 '바이탈(vital) 미디어 리터러시'라 할 만하다.
그녀가 만드는 가상의 풍경은 현실의 임장감을 진짜처럼 체험하게 만든 18세기의 광학 장치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그것이 더욱 더 정밀해졌다는 차원에서 가상과 현실의 변별성이 더욱 더 공고해진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즉 이전의 광학 장치가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가상과 현실의 상사성(相似性)을 도드라지게 했다면,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가 구축하는 가상현실에는 디지털의 가상과 아날로그의 현실의 상이성(相異性)을 공고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가상현실 구축의 테크놀로지가 더욱 정밀해진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에 가상과 현실의 변별성이 더욱 더 구체화되는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아이러니처럼 읽힌다. 컴퓨터 그래픽 테크놀로지가 더 정밀해진 오늘날에도 가상 세계에 실재감을 부여하는 투명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은 여전히 요원하다. 투명한 증강현실의 개념보다 심장이 뛰고 들숨 날숨이 교차하는 호흡으로 인해 가슴 벅찬 현실을 절대로 망각할 수 없는 불투명한 ‘복합현실(Mixed reality)’의 실제가 무엇보다 우리를 늘 일깨우는 까닭이리라.
김안나의 가상현실 장치 또한 이러한 차원에서 읽힌다. 그녀의 가상 세계는 현실의 이면에서 꿈틀거리며, 언제나 현실을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 〈Breath 숨 息〉는 “현재 대기 환경 지수와 날씨 데이터에 따라 가상 환경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라이브 시뮬레이션 프로젝트”이다. 현재 대기 환경 조건을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가상현실은 현실에 대한 재현이자, 재연이되, 늘 현실의 실체적 문제의식에 직면하게 만든다. 현실의 외피적 이미지보다 환경오염과 전 지구적 생태 위기와 같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실체적 내면을 들추어내는 까닭이다. 특히 ‘여기/지금’의 태양의 위치, 대기 환경 지수와 날씨 조건을 교감하게 만든 김안나의 ‘가상/현실’은 “미술관의 벽을 해체”하며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면서도 확연하게 구분하지 않는 빗금(/)의 사이 공간’ 안에서 만나게 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북극 얼음 층의 소멸 위기와 COVID19가 야기한 팬데믹 상황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탄압하는 일련의 사건으로 촉발된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맞닥뜨리는 인류는 여전히 ‘깊은 심호흡’이 갈급하다. 첨단의 디지털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주도하는 사회에서 생명의 가치가 더 소중해지는 것이다. 혼란의 시대에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이 땅에 대한 소중함과 생명의 가치를 더욱더 성찰할 일이다. 차가운 디지털 테크놀로지 안에 따뜻한 생명의 가치를 품어 안는 것! 이러한 지향성은 김안나의 작업이 품은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를 빛나게 하는 지점이다.

 

3. 홍희령 - 역설과 아이러니의 리터러시
홍희령의 작품 <장수제면소>는 가장 원초적인 미디어를 통해서 언어가 지닌 리터러시의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언어가 지닌 기의로서의 위상으로부터 고의적으로 미끄러지면서 창출하는 역설과 아이러니의 리터러시를 우리에게 전한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는 ‘투명한 아크릴 판에 학력과 전시 경력을 적어 쌓아 올린’ 후 <경력 쌓기>(2007)라고 작명하거나 ‘연필(흑심)로 검게 칠한 두루마리와 하얀 두루마리를 걸어놓은’ 후 <흑심을 버려라>(2012)고 자신의 작품을 명명한 것은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 인(人)’자를 쌓아놓은 작품 <인산인해(人山人海)>(2014)나 저울 위에 모래 포대를 올려놓고 그 앞의 바닥에 ‘작품에 무게를 더하다’라고 써놓은 작품 <작품에 무게를 더하다>(2005)는 또 어떠한가?
홍희령이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부여하는 명명론(命名論)은 우리에게 세상의 고정된 의미를 전복해 보기를 요청한다. 기표(signifiant) 위에 기의(signifié)를 덧씌우는 일이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관성적인 언어 행위를 강요한다. 그것은 어떤 차원에서 하나의 폭력이다. 생각해 보라! ‘미술가, 아내, 딸, 엄마’ 등, 하나의 이름으로 족한 인간 주체 위에 덧씌우는 이름들은 한쪽의 패러다임을 강요하고 다른 쪽을 말살시키는 것이다. 홍희령은 이처럼 관습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사용하는 단어의 쓰임새를 전복하면서 사회적 합의라는 폭력에 의해 희생된 다른 의미들을 역치와 도치 그리고 중의(重義)의 방법론을 통해서 뼈 있는 농담과 빛나는 유머를 길어 온다.
이번 출품작 <장수제면소>는 ‘건강과 장수를 위한 국수’가 실제로는 “욕을 많이 먹으면 장수한다”는 속담과 맞물리면서 고유한 기의를 지닌 ‘장수’라는 기표를 비튼다. 이 작품은 장수라는 하나의 텍스트(기표)에 부여된 고정된 의미(기의)를 중의적으로 사용하면서 기의를 확장한다.
전시장을 마치 식당과 주방처럼 꾸미고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넓게 펴서 그 위에 먹으로 텍스트(욕)를 적어 넣은 후 그것을 다시 ‘면 뽑는 기계’를 통해서 국수(욕국수)를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아이러니다. 홍희령의 전시장은 윤리나 사회적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사용 자체가 억압된 ‘욕’이라는 대화의 한 방식을 분출하는 장이다. 감정의 찌꺼기를 날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욕지거리는 그녀가 만든 밀가루 반죽 위에서 한바탕 유희의 장을 펼친다. 보라! 이곳은 어찌 보면 욕이라는 기의가 생산, 소비되는 장이지만, 한편으로 이곳은 욕이라는 기표가 생산되었다가 이내 해체되고 와해되는 곳이기도 하다. 반죽 위에 생산된 욕이라는 텍스트가 면 뽑는 기계에 의해서 갈가리 찢겨 나오는 까닭이다.
작가가 언급하듯이, 그녀의 작품 <장수제면소>는 “국수를 밀고, 면을 뽑고 글을 쓰는 일종의 수행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나아가 소극적이나마 참여하고 작용하는 사회, 정치적 행위를 실천”하는 장이다. 작가는 자신의 ‘장수면’이 “욕을 먹는 사람보다 욕을 하는 사람을 위한 국수”라고 언급한다. 때때로 터져 나오는 욕을 억압한 채 살아가는 다수의 관객에게 ‘욕의 생산과 소비’의 장을 제공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위무하는 까닭이리라.
생각해 보자. 이곳에선 리터러시의 능력 즉 ‘읽고 쓰는 능력’이 요구된다. 소통의 벽에서 발현되는 참을 수 없는 분노, 끓어오르는 화가 만드는 ‘욕’은 발화만 되었을 뿐, 기표와 기의가 제대로 분화되지 못한 채 응결된 하나의 메시지 덩어리다. 그것은 ‘이미지/텍스트 덩어리’로부터 기인하는 시각성의 비언어적 메시지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텍스트가 이미지에 대해서 지니는 ‘고정(ancrage)’의 기능을 넘어서 중의와 다의를 생산하는 ‘중계(relais)’의 기능을 강화한다. 그런 점에서 발화되었으되 기표와 기의로 분화되지 못한(않는) ‘욕 덩어리’는 이미지와 같은 풍부한 의미를 함유하는 ‘메시지 덩어리’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홍희령의 작업 <장수제면소>는 다의의 메시지로 해석될 무한한 가능성을 관객과 함께 열어젖힌다. 즉 그녀의 작품은 ‘표현면(plan de l’expression)’과 조응하는 ‘내용면(plan du contenu)’에 살짝 비틀어 개입시키는 유쾌한 ‘비주얼 리터러시’의 ‘발화 공간’인 셈이다.

 

4. 정세용 - 빛이 전하는 판타지 리터러시
작가 정세용은 기계로 장치된 작품인 〈Flying Machine〉을 통해서 LED 빛이 창출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전한다.
작가가 ‘빛 묶음체(Flying Machine)’라고 언급하는 이것은 어두운 전시 공간 속에서 마치 공상 소설에 나오는 괴비행체 또는 알 수 없는 우주선처럼 형상을 드러내며 때로는 현란하게 때로는 온화하게 빛을 뿜어내면서 관객을 맞이한다. 육중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양 귀퉁이를 쇠사슬에 의지한 채 천장에 매달린 이것은 자신의 몸체 중간에 철로 된 톱니바퀴를 가지고 있어, 천정에 연결된 체인으로 인해 끊임없이 돌아간다. 이 기계 운동체의 내부로부터 발산하는 ‘빛’은 기계 표면에 일정한 패턴으로 뚫린 구멍들을 빠져나오면서 어두운 전시 공간을 화려하고도 신비로운 ‘빛의 패턴’으로 가득 채운다. 화이트 큐브의 공간을 일순간에 빛의 향연으로 충만하게 만든 정세용의 작품은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 관객에게 익숙했던 장소를 ‘낯선 곳’으로 변화시킨다. 대개의 사람이 간접 경험으로만 알고 있는 우주 공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러한 환상적인 변주는 현실의 장소를 비현실적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만들기에 족하다. 이른바 판타지 공간으로의 변주라 하겠다.
그러나 유념할 것이 있다. ‘공상, 환상’이라 번역되는 판타지는 실체가 없는 헛된 상상이나 공상이 창출하는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실재(réalité)’라는 개념의 다른 유형이라는 것을 말이다. 판타지는 실상 오늘날 이미지(image)라는 고대 그리스어 어원인 판타스마(φ?ντασμα, Phantasma)로부터 왔다는 점에서 대개 판톰(Phantom)이라는 유령, 허깨비처럼 실재(reality)와는 다른 허상(虛像)의 것을 지칭하면서 ‘현실과는 유리된 이미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판타지는 대개 진정성을 미혹하는 허상의 존재처럼 각인되어 왔다. 그렇지만 들뢰즈(G. Deleuze)의 이미지론을 참조할 때, 판타지는 존재론적으로도 우리의 일상 이미지 속에 잠세태(virtualité)의 형국으로 깊이 잠자고 있는 현실이자 실재라는 철학적 해석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판타지의 이미지가 잠세태로부터 어떠한 특이점(singularité)을 만나는 현실화(actualisation)의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현현하듯이, 정세용의 작업에서 판타지는, 빛 묶음체라는 기계 운동체의 내면 어디에서 꿈틀거리며 운동을 지속하다가 몸 밖으로 현실화되면서 비로소 현현한다. 그런 면에서 역설적으로 말해 그의 작품 속 환상의 빛은 조각의 몸체에 육화(incarnation)된 셈이다. 관객은 정세용의 판타지적 세계를 대면하면서도 영과 육, 생과 사와 같은 존재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의 작업에서 기계적 테크놀로지로 둘러싸인 미디어 리터러시란 기본적으로 미메시스와 같은 모방론을 통해 알 수 없는 우주를 재현하는 판타지적 상상에 기초하는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5. 정혜련 - 추상 조형과 지표로서의 리터러시
작가 정혜련은 LED 조명이 발하는 유연한 선제 조각을 전시 공간에 잠입시킨다. 전시 공간 속 한구석에 식물 기둥처럼 자리한 이 다발의 선제 조각은 구석의 한 공간으로부터 자라나 전체 공간을 구불구불하게 횡단한다. 식물의 넝쿨 혹은 동물의 신경관이나 혈관처럼 흘러내리는 이 조각은 흐르는 색의 빛을 난색으로부터 한색으로, 또는 그 역으로 다채롭게 변주한다.
일련의 추상 조각 혹은 추상적 설치의 조형 언어는 피상적으로는 미학 내부의 담론으로부터 꿈틀거리며 자라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이러한 비언어적 조형 언어는 봉산문화회관이라는 전시 공간이 위치한 대구의 장소적 맥락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덧입혀 미학 외부의 담론을 풍성하게 만든 미디어 리터러시라 할 것이다.
이번 출품작 〈Treasure island, dnalsi erusaerT〉는 ‘보물섬, 섬물보’로 번역될 수 있겠다. 추상의 조형 설치물이 담는 사회적 역사적 맥락은 언어의 정치와 역치가 만드는 언어적 유희가 덧붙여져 상상의 리터러시를 창출한다. 즉 정혜련이 어린 시절 흥미롭게 읽었던 스티븐슨(R. L. Stevenson)의 소설 ‘보물섬’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복잡다기한 인간관계가 귀결시키는 하나의 세상을 ‘보물섬, 섬물보’라는 텍스트를 통해서 새로운 의미 구조로 바라보는 것이다.
보물섬, 섬물보가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의 발언을 보자: “나는 봉산문화회관이라는 하나의 지표를 중심으로 발생되는 세계를 그려 보고 싶다. 거기에는 신화의 산이 있고, 천의 내가 흐르고, 집 앞의 별이 있고, 광고 전단지로 된 탑이 존재한다. 역사는 바람이 되고, 우리가 새겨 놓은 의미들은 돌멩이가 되는 세계를 구현해 보려고 한다.”
위에서 작가가 언급하는 지표(指標)란 무엇인가? 그것은 표상하는 사물과 의미 사이의 인과 관계와 상관성을 드러내는 기호로 인덱스(index)로 명명된다. 이것은 “방향이나 목적, 기준 따위를 나타내는 표식”이다. 보라. 흔들리는 배 위에서 가리키는 나침반의 바늘은 북쪽을 가리키는 지표다. 빵 가게의 새벽녘 창문 불빛은 개업을 준비한다는 지표이며, 창문의 어둠은 문을 닫았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또한 얼굴에 핀 검버섯은 나이가 들었다는 지표이며, 어린아이의 무릎에 난 멍 자국은 얼마 전에 넘어지는 사고가 있었음을 알리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일련의 사건이 남긴 ‘흔적(trace)’과 같은 것이다.
정혜련은 이처럼 빛으로 만든 추상적 드로잉 안에 장소성과 역사성의 리터러시를 지표의 양상으로 흔적을 남긴다. 프랑스 탄광 지역과 지질학적 재료를 탐구하고, 대구의 성매매 집결지의 공간과 사회학적 맥락을 모색한 그간의 작업들은 그러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관객이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그녀의 설치 조형물이 드러내는 비언어의 이미지 안에서 시각적 기표만으로 그것이 담은 다양한 기의의 갈래를 더듬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간과 지층에 대한 문제, 작품이 드러내는 자연의 세계, 인간계 속 작은 인간, 그리고 인간의 근원인 자연까지의 어떤 순환. 그리고 그것을 반영하는 레이어들을 가시적으로 고민하는 형태”를 어떻게 조형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번 출품작에서 작가가 지표 혹은 인덱스로 삼은 봉산문화회관이라는 공간과 그 안을 횡단하는 LED 선제 조각은 전시장 밖의 맥락을 끌어안고 횡단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이 각자의 마음에 담은 보물섬과 같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에필로그
이번 기획전 GAP은 봉산문화회관에 소재한 일명 ‘유리상자(Glassbox)’라 불리는 공간에서 개인전의 형식으로 ‘유리상자-아트스타’에 참여했던 74명의 작가들 중에서 5인의 작가를 초청한다.
일상의 오브제 설치와 같은 아날로그의 미디어로부터 기계 운동체를 만드는 로우 테크놀로지의 미디어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과 첨단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구사하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5인의 참여 작가들이 사용하는 미디어는 다양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이 미디어에 드러내는 비주얼 리터러시 또한 다양하다.
유념할 것은 참여 작가들이, 언어의 정치와 역치, 은유, 가상과 상상 등 각자의 다채로운 리터러시 안에 현실의 맥락을 접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예술의 자율성 미학에 천착한다고 할지라도 세계를 대면하는 예술가가 마땅히 직면해야 할 지점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예술과 떨어진 채 현실의 이익과 맞물려 헤게모니를 만들면서 저마다의 바쁜 삶을 살아가는 이 시점에도 미술가들의 비주얼 리터러시는 유의미하다. 미디어가 또 다른 미디어를 낳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미술가들이 자신의 미디어 안에 구축하는 리터러시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의 작품을 보고, 읽으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어떨까? 여기 우리의 미술가들이 반갑게 들려주는 인사말이 있다. “안녕! 멀티미디어 리터러시.”


김성호(미술평론가)

 

작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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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시실 전경

 

 1전시실: 권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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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시실 권효정_channel of ego_가변설치_pvc파이프, 수중모터, 반투명 고무 공, 흰색 투명 공, 스티로폼 공 등_2020

1전시실 권효정_blur drawing1,2,3,4,5,6_210×297mm_ohp필름지 위에 매직, 트레싱지_2020

 

권효정2.jpg

 

1전시실 권효정_channel of ego_가변설치_pvc파이프, 수중모터, 반투명 고무 공, 흰색 투명 공, 스티로폼 공 등_2020
1전시실 권효정_blur drawing1,2,3,4,5,6_210×297mm_ohp필름지 위에 매직, 트레싱지_2020


작가노트
삶 속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은 현재와 과거의 경험과 지식들을 통해 새롭게 관계되어 의미를 만들어 내고 매순간 변화를 느끼고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생산해 낸다. 예술가가 삶 속에서 예술은 마주하는 이러한 태도 속에서 channel of ego는 탄생했다.

 

(예술(가)의 모습은 물과 많이 닮아있다. 정해지지 않은 유연함, 섬세함, 평범함, 강함, 투명함, 흐르는 소리 같은 것들이 닮아있다.)
어디로든 흐를 수 있는 물이 될 수 있다면 흘러가는 ‘이 길(수로)’이 ‘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장 알맞은/유연한 형태/모양으로 공간(전시장)을 흐르는 물/수로가 되고 싶다.

 

 1전시실: 김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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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시실 김안나_Breath 숨 息_Limitless_Real-time Live Simulation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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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시실 김안나_Breath 숨 息_Limitless_Real-time Live Simulation_2020

 

작가노트
2020은 전염병 확산에서 전 세계 시위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식 체계의 대전환을 일으킨 해라고 할 수 있다. 호흡기 질환인 Covid-19에서 계속 증가하는 대기 오염 문제,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행진 구호에 이르기까지 BREATH는 새로운 어원학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작품 BREATH는 현재 대기환경지수와 날씨 데이터에 따라 가상 환경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는 라이브 시뮬레이션 프로젝트이다. 현재 대기 환경 조건을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가상 환경은 미술관의 벽을 해체하며 가상과 실제를 융합시킨다. 깊은 ‘심호흡’은 이 혼란과 흐름의 시기에 우리의 현존 상황 그리고 함께 노력하여 만들어 나가야 할 사회에 대한 깊은 숙고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1전시실: 홍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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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시실 홍희령_장수제면소_가변설치_밀가루 외_2020

 

작가노트
나는 관습적 사고와 이미지의 관계,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미에 주목한다. 내 작업에서 이러한 관계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연출되고, 이를 통한 유희적 사유가 삶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문제 인식으로 이어지게 하고자 한다.

 

 2전시실: 정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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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시실 정세용_Flying Machine_가변설치_LED라이트, 모터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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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시실 정세용_Flying Machine_가변설치_LED라이트, 모터_2016


작가노트

 커튼을 열고 어두운 빈 공간에 들어서면 정면의 허공에 빛을 뿜으며 천천히 돌아가는 빛 묶음체(Flying Machine)가 있다. 이것은 철로 만든 기계 같기도 하고 비행기 날개 같기도 하다. 육중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쇠사슬로 양 귀퉁이가 천장에 매달려 있고 조형물 중간에 철로 된 톱니바퀴가 있어 천정에 연결된 체인으로 인해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

 

 이 조형물은 철판 표면에 일정한 패턴으로 구멍이 나 있고 조형물 안쪽에 설치된 빛 묶음에서 발산된 빛들이 철판 안 표면에서 부딪쳐 구멍으로 무수히 뿜어져 나와 어두운 공간을 빛의 패턴으로 채운다. 관객이 밝은 곳에서 문을 거쳐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가면 빛들이 발밑에서 머리끝까지 공간 전체를 천천히 돌아가며 관람자를 맞이해 현실에서 갑자기 우주공간으로 소환된 생경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이 익숙하지 않다. 어두운 공간에 혼자 있는 것도 그런데 빛들이 서서히 움직이니 어지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어두움에 머물면 감각도 공간에 적응해 조형물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둡고 조용한 공간은 현실에 부대끼고 바쁜 와중에 생각하지 못했던 사색, 더 나아가 우리가 태어나 살고 생각하며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인간의 외로움을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보면 감탄과 경외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우주를 탐구하는 과학자와 철학자들도 우주이론과 지성으로 연구하지만 밝혀내기엔 한계가 있다. 과연 빅뱅으로 저 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힘의 균형을 갖추어 팽창하고 있는가, 아님 누군가 계획을 가지고 만들어 내어 우리에게 알아보라고 문제를 낸 것인가. 티끌보다 적은 존재인 우리는 언젠가 우주에서 없어지는가 아니면 이 우주의 비밀을 함께 탐구하고 알아나가는 존재인가.
 날개 형태의 기계(Flying Machine)를 만들고 모터와 체인을 전기로 계속 작동시키는 것은 본질을 알아가려는 나의 작은 노력이다.

 

 3전시실: 정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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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시실 정혜련_Treasure island, dnalsi erusaerT, 공간내 설치, mixed media,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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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시실 정혜련_Treasure island, dnalsi erusaerT, 공간내 설치, mixed media, 2020


작가노트

 

Treasure island, dnalsi erusaerT

 

 나는 지역과 그것의 생김새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우리는 삶이라는 과정을 통해 본인의 내부세계를 만들어 간다고 여기지만, 개개인의 삶들은 사회, 도시라는 거대한 외부 세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 둘은 유기적인 연관성을 지닌다. 나는 이러한 연관 관계를 살펴보는 일이 흥미롭다. 시간, 물질, 공간을 두서없이 나열해 두고 그것들로 하여금 발생되는 경험, 의미, 이미지 등을 수집한다. 수집된 개체들은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여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관찰자인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 드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규칙 없이 나열된 이미지들은 관람객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스스로가 나열된 이미지 중의 하나가 되어 공간 속에 엮어지고 해석된다.
 나는 지역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에 하나의 레이어를 삽입하려고 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은 어린시절 매우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다. ‘보물’이라는 상징적(소설상 실제 보물) 대상을 찾기 위한 구성원들의 숨 막히는 갈등과 장소를 옮겨가며 각각의 역할과 의미들이 전환된다. 외다리 선장, 보물, 앵무새, 지도, 소년, 바다, 고립된 공간, 소문 등 소설을 이끌어 가는 요소들은 소설 내부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결과를 도출해내어 보물섬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후 각각의 요소들은 다른 소설과 영화, 예술작품 속 오마쥬되고 재현되어 다른 형태들의 보물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로 각기 다른 세계를 만들어 주고 있다.
특히나, ‘보물’이라는 단어가 주는 욕망의 완결성은 각 요소들의 의미를 끊임없이 생성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도시라는 공간은 ‘보물의 섬’과 유사하게 닮아있다. 그곳을 탐닉하고 유용하는 이들은 각자가 만들어 놓은 ‘보물’을 향해 살아간다. 이는 소설 속 소년이 찾아낸 물질적 대상이기보다 일련 과정으로 성장해낸 그의 경험치나, 의미들일 것이다. ‘보물섬’이라는 레이어로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바라본다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의미들처럼 수집된 각각의 의미들은 등장인물들처럼 살아서 전시장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봉산문화회관이라는 하나의 지표을 중심으로 발생되는 세계를 그려 보고 싶다. 거기에는 신화의 산이 있고, 천의 내가 흐르고, 집 앞의 별이 있고, 광고 전단지로 된 탑이 존재한다. 역사는 바람이 되고, 우리가 새겨 놓은 의미들은 돌멩이가 되는 세계를 구현해 보려고 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공간, 관람객들은 내는 새로운 의미구조를 발견하고 각각의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 지점이 새롭게 공간을 인지하는 대상으로 생성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는 지나간, 여기, 앞으로 나아갈, 시간에 대한 관찰 혹은 실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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