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립미술관은 로컬 프로젝트 2021의 첫 번째 전시 민병길의 <질료들의 재배치>를 개최한다. 청주가 고향인 작가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였으나 사진예술에 매료되어 1993년 학천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사진작가로 입문을 한다. 초창기에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민병길은 흑백필름을 고집하며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해 직접 암실에서 인화하는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사진 미학을 추구할 ‘질료’가 되는 풍경을 찾아서 카메라를 짊어지고 다니는 억척스러움은 천상의 예술가로 작가적 의식이 몸에 배어 있다.
흑백의 미감으로 표현되는 그의 작업은 무(無)의 공간을 지향한다. 광활한 자연의 모습을 외면한 채 대상을 최소한으로 남기는 절제와 여백의 이미지는 동양의 수묵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연 속에서 늘 배회하며 작품의 소재를 찾는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을 고집스럽게 지속하며 묵묵히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사색을 즐겨 하는 것이 작품을 구현해내는 원천이기도 하다. 절제된 영상미와 함께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안개와 물을 기반으로 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안개로 인해 물체가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과 지평선이나 수평선 가운데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풍경을 찾아 카메라에 담고 있다.<질료들의 재배치>는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구성하는 물과 안개, 나무들을 질료로써 바라본다. 이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과정을 통해 풍경이 이전되고, 이를 보면서 늘 곁에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갔던 풍경을 재인식하는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의 성향은 작가가 줄곧 추구하는 흑백사진에서 아주 미세하게 ‘색(色)’을 사용함으로 작업의 확장을 지향하고 있다. 텅 빈 공간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숨’을 담아낸 작업들은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쉼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초봄에 미세한 파스텔톤의 민병길 풍 자연미에 빠져들어 지친 영혼을 치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