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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 전시 [자하미술관] 정철교 개인展 <불타는 풍경, 피돌기의 초상>

전시기간 ~2019-08-31
전시장소
전시장주소 서울시 지도보기
오픈시간
관람료
기관명 자하미술관
문의
웹사이트

상세내용

● 전 시 명 : 정철교 개인展 <불타는 풍경, 피돌기의 초상>

● 전시기간 : 2019. 4. 5(금) ~ 4. 28(일)

● 전시장소 : 자하미술관

● 작가소개 : 정철교 

● 오픈시간 : 화~일 10:00~18:00 

● 관람요금 : 없음

● 주소 :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자하 미술관

● 문의 : 02-395-3222

● 웹사이트 : http://www.zaha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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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교_신암리 양식장_ oil on canvas_91x116.8_2016


 

불타는 풍경피돌기의 초상

- 정철교의 ‘불의 회화’를 읽는 몇 가지 코드


김종길 | 미술평론가


불은 부동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잘 때도 살아 움직인다. 꿈꾸는 사람에게, 불의 이미지는 강렬함을 전달하는 하나의 학파와도 같은 것이다.

_ 가스통 바슐라르, 《불의 시학의 단편들》(문학동네, 2004) 중에서

오직 왜곡된 환상만이 여전히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_ 괴테[1]


2009년 3월, 정철교는 부산시 해운대구의 ‘갤러리 이듬’에서 개인전 <내가 나를 그리다_I paint me>를 열었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그의 자화상들은 “사실적 묘사에 치중”(강선학)한 작품들이었다. 극사실주의 화법이라기보다는 ‘나’라는 대상(혹은 타자)을 면밀하게 관찰해서 그린 초상들이란 이야기다. 대상/타자인 ‘나’를 실재의 나로부터 거리두기 해야만 사실적 묘사에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또 그 ‘나’라는 대상/타자가 개인전의 주제였으므로 대부분의 작품에서 배경은 지워지거나 사라졌다. 화면에는 오롯이 ‘나’만 존재했다. 미술평론가 강선학은 이 전시 평론에서 정철교의 초상은 물론이요, 그의 ‘배경지우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따져 묻는다. “얼굴 뒤에 있었을 정경은 단순히 풍경이기보다 시간이나 사건, 정황을 일러주고 기억을 환기시키고 자신을 자신이게 확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장소란 일상에서의 풍부한 추론의 근거지이다. 그리고 생각을 연결하고, 기억의 근원과 기억의 기술이 유래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역할과 기억을 휘발시켜버린 것”이라면서 “자신의 시간, 자신이 있었던 공간을 지워버린 것이다. 배경이 없는, 특정한 공간과 시간이 배제된 자신의 모습을 따낸 것”의 절박함이 무엇인지 의문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기록이나 사건이 아닌 자신에 대한 응시”이고, “모든 것을 배제하거나 괄호 속에 묶어버린 얼굴은 자신만을 만나자는 것”에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런데 이러한 정철교의 작품과 강선학의 비평적 분석은 그 이듬해인 2010년부터 완전히 다른 양상에 직면하게 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덕골재길 작업실로 이주하면서부터였다. 그의 삶을 둘러싼 풍경이 그로 하여금 시간이나 사건, 정황을 쉼 없이 일깨우고 기억을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을 자신이게 확인시키는 사건이 펼쳐졌다. 그가 이주한 곳에 원자력발전소가 있었기 때문이다.[2] 그때부터 그는 괄호 속에 묶어두었던 얼굴[나]을 열고 ‘나’와 풍경을 하나의 배경으로 인식하는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풍경의 이름을 그는 ‘고장 난 풍경’이라 불렀다. 발전소가 끼어든 풍경들은 온전한 삶의 풍경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나는 나에게 타자이고 지옥인가? 정철교의 물음이다.”

- 강선학, 「정철교, 나는 너다.」에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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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교_골매마을 들개_ oil on canvas_91x116.8_2014



스스로 깨닫기 현실이라는 실존

2009년과 2010년 사이, 그 짧은 순간에 미학적 변신의 이행이 벌어졌다. 실재로서의 나의 실존을 캔버스에 초상 그리기의 ‘(미학적) 실재성’으로 드러냈던 회화적 구도가 뒤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2009년 이전의 작품들은 [나(실존)-‘나’(실재성)/배경(현실의 정경)-‘배경 없음’(현실 지우기)]라는 구도에서 [‘나’(실재성)/‘배경 없음’(현실 지우기)]를 극대화함으로써 ‘나’의 실재성을 재현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단 이야기다. 그런데 불과 1년 사이, 그가 원자력 발전소 주변으로 작업실을 옮긴 그 짧은 삶의 변화에서 작품은 미학적 재현으로서의 ‘나’(실재성)가 아닌, 실재로서의 나(실존)를 어떻게든 표현하는 쪽으로 이행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는 그가 스스로 뭔가를 깨닫는 ‘자각(自覺)’의 과정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작가노트」에 “아름다운 마을 풍경과 사람들의 조용한 평화의 삶이 철거되고 망가지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 한번 건설되면 영원히 없애지 못할 불안한 건축물! 고장 낸 풍경, 고장 난 풍경, 고장 나도 고칠 수 없는 풍경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면서 “붉은 윤곽선은 혈관이고 핏줄이다. 굵은 선은 동맥과 정맥, 가는 선은 실핏줄이다. 멈추고 정지된 풍경에 피돌기를 시도하려 한다. 꽃과 나무, 사람과 집에 활기가 넘치고 생명력이 되살아나도록.”이라 적고 있다.

그가 “불안한 건축물! 고장 낸 풍경, 고장 난 풍경”이라고 한 것은 아마도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가 작업실을 옮기고 얼마 뒤,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하는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가 있었다. 그로인해 후쿠시마 현의 수많은 주민들이 죽거나 다치고 이주했다. 그곳의 원자력발전소는 방사능을 누출했다. 이날 이후 그는 단지 풍경의 한 일부였던 원자력발전소가 얼마나 불안한 파괴적 요소인지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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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교_골매 마을 풍경_ oil on canvas_130.3x162.2_2014


그 불안은 삶의 풍경 속에 있었고 그래서 그는 캔버스에서 사라졌던, 아니 지워버렸던 풍경을 다시 불러 들였다. 역설적으로 불안은 풍경을 독립된 하나의 주체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풍경은 인물 뒤에 펼쳐진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산 존재’이며, 생명활동의 거대한 순환계라는 인식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거의 의미조차 없었던 ‘배경 없음’(현실 지우기)이 ‘현실의 정경’으로 되살아나 전면적 주제로 부상하는 순간이랄까!

그뿐만 아니라 그는 2009년과 동일한 제목의 <내가 나를 그리다>전을 10년이 지난 2018년에 부산광역시 금정구 개좌로의 ‘예술지구 P’에서 열었는데, 수백 점의 자화성은 ‘나’(실재성)의 탐색이 아니었다.[3] 그것은 오롯이 나(실존)의 실체를 캐묻는 실존적 화두였다. 배경이 되살아난 뒤의 [나(실존)/배경(현실의 정경)]도 아니고, [나]/[현실]이라는 두 개의 주제가 각각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다”(『현실동인 제1선언』의 첫 주제)라고 말한 현실주의 미학을 10년 동안 궁구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실존’과 ‘현실’ 너머의 상징은 무엇일까? 그가 “붉은 윤곽선은 혈관이고 핏줄”이라고 말하거나, “굵은 선은 동맥과 정맥, 가는 선은 실핏줄”이고, “멈추고 정지된 풍경에 피돌기를 시도”하겠다는 말들의 저의는 “꽃과 나무, 사람과 집에 활기가 넘치고 생명력”을 되살려 내는 데에만 있는 것일까? 10년 동안 그토록 집요하게 붉은 핏줄의 풍경을 그려 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동네는/ 원자력발전소 동네/ 머리에 이고/ 산다”

-정철교, 자화상을 그린 캔버스 뒷면에 쓴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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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교_수협 가는 길_ oil on canvas_130.3x193.9_2017


불의 회화 회화적 상상력과 신화

그의 모든 풍경들은 캔버스라는 사각 프레임 안에서 부분적으로 존재하나 <서생, 배꽃 필 무렵>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부분은 무언가를 배제하거나 상실하지 않는 전일성으로서의 전체를 보여준다. 그가 그린 부분들은 전체로부터 해체되거나 분절된 것이 아니라, 전체의 한 부분들을 이어가면서 보여주는 양상이라는 이야기다. <수협가는 길>과 <신리마을>이 다르지 않고 <신암리 마을 정경>과 <화산리 까마귀>조차 다르지 않다. 그것들은 그가 사는 곳의 다만 한 부분일 뿐이고, 그곳을 향한 시선에 한해서는 전체다. 또 화면에서는 원자력발전소를 원거리에 두고 있으나, 사실 풍경들은 그 발전소를 기점으로 넓게 퍼지면서 동심원으로 멀어지거나 가까워질 뿐이다. 그러니 그의 회화는 서생이라는 지역적 공간성을 상징으로 하는 하나의 통일적 생명자연론을 보여주되, 그 내부의 암적 존재로서 발전소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의 이러한 전일적 회화세계는 동아시아의 설화적 상상력과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태초의 천지만물은 거인 반고(盤古)가 죽어서 그 몸이 분화된 것에서 시작한다. 거인신체화생(巨人身體化生) 신화로서 반고의 이야기는 동아시아의 자연관이 전일적 세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죽자 신체의 기관들이 천지만물로 변하는데 음성은 벼락, 왼쪽 눈은 태양, 오른쪽 눈은 달, 머리털과 수염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또 그의 신체는 동서남북의 극지와 웅장한 삼산오악(三山五岳)이 되었고, 피는 강과 하천으로 변하였으며 근육들은 도로가 되고 살은 논밭이 되었다. 이 땅의 초목은 그의 피부다.[4] 반고의 신체와 그것이 변화한 천지만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호흡:바람과 구름, 목소리:번개와 천둥, 왼쪽 눈:달, 오른쪽 눈:해, 사지오체(四肢五體):대지의 4극(동서남북)과 5개의 산악, 혈액:하천, 근육:지맥(地脈), 살:논과 밭, 머리카락과 수염:하늘의 별들, 피부와 체모:풀과 나무, 치아와 뼈:금속과 암석, 골수:주옥, 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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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교_암 가마솥 국밥_oil on canvas_130.3x193.9_2017


자, 이제 정철교의 고백과 반고신화를 비교해 보자. 그는 “붉은 윤곽선은 혈관이고 핏줄이다. 굵은 선은 동맥과 정맥, 가는 선은 실핏줄이다. 멈추고 정지된 풍경에 피돌기를 시도하려 한다. 꽃과 나무, 사람과 집에 활기가 넘치고 생명력이 되살아나”는 것이 미학적 지향이라 했다. 서구의 신체화생은 살해와 ‘희생제의’에 있으나, 동아시아의 신화는 온전히 그 몸의 조화로운 분화에 있다. 정철교가 서생의 풍경에서 주목한 것은 ‘불안’과 ‘고장’이라는 자연의 위기, 생명 순환계의 ‘이상 징후’라는 현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어떻게 ‘피돌기’를 하여 되살릴 것인가에 있었다. 왜? 그 모든 풍경들이 하나하나의 호흡이고 소리이며, 눈이고 또한 사지오체이자 피였기 때문이다. 자연은, 아니 삶의 풍경은 인간이 깃들어 사는 반고의 몸이자 마고(麻姑)이며, 그 자체로서의 지구 어머니이지 않은가!

그는 ‘고장 난 풍경’을 ‘산 풍경’으로 되살리기 위해 피돌기의 색채를 가져왔다. 붉은 색은 ‘피’ ‘뜨거움’ ‘활기’ ‘생명력’으로서의 피돌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상징은 뜨거운 활기로서 ‘불’이 아닐까 한다. 그는 붉은 선들이 동맥과 정맥이요, 실핏줄이라고 말하지만 화면에서 그 선들은 활활 타오르듯 넘실거린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불의 시학의 단편들』에서 “우리 안에서 존재는 결코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긴장의 다양함 속에서 항상 생동하고 있어서 올라가고 내려가며 빛나거나 어두워진다. 불이란 결코 부동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잘 때도 살아 움직인다. 체험된 불은 늘 긴장된 존재의 표시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정철교의 회화는 시커멓게 타 버리는 현실적 테제로서의 불이 아니라, 생동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상징적 테제로서의 불이다. 그러니 그의 회화를 ‘불의 회화’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그의 ‘불의 회화’는 그런데 2009년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사실적 묘사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다소 역설적일지 모르나 현실을 다루면서도 비현실적 ‘환상성’이랄 수 있는 독특한 표현주의 회화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피부를 벗겨낸 뒤의 핏줄과 근육 같은 붉은 선들이 풍경의 세목을 이루면서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신암마을 풍경>은 풍경의 사실성(Reality)을 확보하면서도 풍경 속의 집, 나무, 길, 담, 하늘의 다양한 색채는 증발된 채 피돌기의 핏줄로 새긴 불의 활기들, 그 꿈틀거리는 생명력만이 충만할 뿐이다. 다른 몇몇 작품들에서는 붉은 선들로 그린 형상에 색채를 일부 가미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사실성’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상당한 인식 변화를 가졌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리얼리티는 친숙한 것, 일상적인 것에 제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미래의 말로서, 잠재적인 것의 거대한 영역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노트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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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교_일광 칠암 전원마을_oil on canvas_130.3x193.9_2017


환상성 재앙을 불제(祓除)하기 위한
실재를 재현하고자 하는 정철교의 ‘사실성’은 로즈메리 잭슨이 환상을 표현하는 두 가지 방식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환상은 욕망에 관해 말하거나 명시하거나 보여줄 수 있는데 그 표현은 묘사, 재현, 명시, 언어적 발화, 기술하기다. 둘째, 환상은 욕망이 문화적 질서와 연속성을 위하는 하나의 장애 요소일 경우에 그 욕망을 추방할 수 있는데 그 표현은 압박하고, 누르고, 배제하며, 힘으로 어떤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5] 그의 작품 세계는 2009년까지 첫째 방식을 택했다. 그는 그 자신을 묘사하고 재현했으며 스스로 기술했다. 회화 속 ‘나’는 욕망의 재현체로서의 환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는 ‘장애 요소’를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회화적 방식을 사용한다. 풍경을 발견하고 그것을 회화적 주체로 상승시켰을 때 그 내부에 장애가 있었다. 첫 번째 환상은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면, 두 번째 환상은 삶의 환경에 파고든 ‘원자력발전소’의 욕망이다. 발전소라는 에너지 생산 질서는 오랫동안 ‘경이’라고 부르는 허구를 생산했다. 그리고 그 질서의 맞은편에 ‘기괴(uncanny)’, 또는 ‘기이함(strange)’을 산출했다. 그가 본 것이 바로 이 ‘기괴’와 ‘기이함’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이미 ‘고장났다’고 판단한 그의 시선은 풍경의 참모습을 그리려는 의지와 충돌하면서 그로테스크한 상태의 선들을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오직 붉은 선만으로 피돌기의 능동적 발화를 표출하고 있는데, 기괴하고 기이한 선들에 의해 풍경은 어떤 환상성을 노정하며 미끄러지는 양상이다. 나는 여기서 그 불의 피돌기가, 아니 그 불의 피돌기가 화면 전체에 퍼져 있는 회화가 일종의 ‘벽사(辟邪)’의 상징을 갖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붉은 색과 그 불의 양상이 바슐라르가 간파했던 ‘행동주의로의 발화’로 연상되면서 동시에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재앙을 불제(祓除)하는 부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색의 재료가 경면주사(鏡面朱砂)도 아니고 영사(靈砂)는 더더욱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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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교_서생배꽃 필 무렵_ oil on canvas_181.5x259_2016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부적’에 관한 설명에서 “황색은 광명이며 악귀들이 가장 싫어하는 빛을 뜻한다. 부적에 일(日)·월(月)과 광(光)자가 많은 것도 이에 비추어 이해할 만하다. 주색(朱色)은 중앙아시아 샤머니즘에서 특히 귀신을 내쫓는 힘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했고, “적색은 피·불 등과 대응하며 심리적으로는 생명과 감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불은 정화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에 주색이 악귀를 내쫓는데 적절한 주력을 지닌 색깔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철교의 ‘불의 회화’는 미학적 상징만이 아니라 주술적 상징도 함의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정철교는 <핵核몽夢> 전시에 참여해 왔다. <핵몽>은 한국․일본의 예술가들이 탈핵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한 전시다. 첫 전시는 2016년에 있었고 “신고리 5, 6기 승인을 즉각 취소하라!”를 포스터에 새겼다.[6] 그는 <골매 마을 풍경>을 비롯해 여러 점의 서생 풍경 작품을 이 전시에 출품했다. 원자력발전소의 공포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하겠다는 취지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중요한 것은 작품만이 아니라 이제 그 자신이 전시를 통해 행동하는 주체로 나섰다는 점이다. 한 작품이 미학적 언어를 획득하는 과정은 창작 주체로서의 예술가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느냐와 깊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발전소를 그렸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저항’이나 ‘고발’, 혹은 반생명적 미학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정철교의 ‘불의 회화’는 재앙을 불제하기 위한 에너지로 충만해 보인다. 그런 충만함이 고조될수록 그의 회화는 ‘핵(核)’이라는 사귀를 물리치는 치유의 힘이 강해질 것이다. 그의 회화는 지극한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그 표현은 그런 벽사의 상징 때문에 더 강렬한 표현주의 형식으로 나아갈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형식이, 그 불의 에너지가 고장 난 풍경을 산 풍경으로 되살리게 될 것이다.





[1] 로즈메리 잭슨 지음,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환상성-전복의 문학》, 문학동네, 2001. 5쪽에서 재인용

[2] 임은정 기자, 〈‘고장 난 풍경’이 던져주는 불안〉, 《국제신문》, 2013년 5월 28일자 기사에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골매마을과 신리마을은 신고리원전 건설로 풍경 일부가 ‘고장 난 곳’이다. 이주해야 하는 말을 주민은 정처 없는 삶을 꾸려야 한다. 그 가운데 3, 4호기로 이주해 신리마을로 왔던 주민은 새롭게 건설될 5, 6호기로 다시 이주해야 하니 이중의 유랑자가 돼 버렸다.”고 적고 있다. 이 기사에서 정철교 작가는 “바닷가에 있는 이 마을은 어획량이 풍부해 평화롭고 살기 좋은 동네였는데 원자력 시설과 송전탑, 고압전선 등이 세워지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집 앞만 나서도 이슬람 돔같이 보이는 원전과 뾰족한 철탑이 눈을 가로막는다. 외면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인터뷰했다. 이 기사는 부산의 프랑스 문화원 아트스페이스에서 2013년 5월 16일부터 6월 9일까지 개최한 그의 제9회 개인전 소식이다.

[3] 그가 작성한 「작가노트」에 따르면 2017년 7월 11일부터 2018년 7월 31일까지 1년 여 동안 400점 가까이 얼굴을 그렸다. 그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리기 위하여 작업실 한쪽에 작은 거울을 두고 그 앞에 동그런 작은 의자를 두어 그기에 앉아 8호나 6호 캔버스에 붉은 유성 매직펜으로 선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하얀 잿소를 바르고 건조 시킨 후에 유화 물감 붉은 색 선으로 덫칠 하였고 때론 유화 물감이나 오일 파스텔로 다른 색들을 넣기도 하였다. 그리고 캔바스 뒷면에 그릴 때의 소회를 간단히 적었다.”고 적고 있다.

[4] 시노다 고이치 지음, 이송은 옮김, 『중국 환상세계』, 들녘, 2000.

[5] 로즈메리 잭슨 지음, 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환상성-전복의 문학』, 문학동네, 2001. 12쪽 참조.

[6] 동해안원전번개답사작가 주최, 부산 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 기획, 탈핵 부산시민연대 후원으로 2016년 11월 10일부터 30일까지 부산 중구 중구로 71의 부산가톨릭센터대청갤러리에서 열렸다. 홍성담, 정철교, 정정엽, 방정아, 박건이 참여했다. 두 번째 전시는 부산 민주공원 기획전시실과 광주 은암미술관에서 열렸다. 부산은 2018년 3월 10일부터 4월 8일까지, 광주는 4월 12일부터 5월 2일까지. 전시명은 <돌아가고 싶다 핵몽2>였고 Akira Tsuboi, 박건, 박미화, 방정아, 정정엽, 이동문, 정철교, 홍성담이 참여했다. 부산 민주공원에서는 전시 개막일인 3월 10일, 토크&콘서트가 있었다. 3시에 기획전시실에서 애니메이션 <無主物> 상영, 그리고 아키라(후쿠시마 현장작가)와 유카, 켄의 토크가 이어졌고, 5시에 중극장에서는 “반핵 창작 콘서트-핵몽”을 주제로 TODA BAND의 공연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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