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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 전시 [아트스페이스3] 박미화展 2019.4.17-5.18

전시기간 ~2019-08-31
전시장소
전시장주소 서울시 지도보기
오픈시간
관람료
기관명 윤진희
문의
웹사이트

상세내용

● 전 시 명 : 박미화展

● 전시기간 : 2019.4.17-5.18

● 전시장소 : 아트스페이스3

● 작가소개 :  박미화            

1957    서울生


1989    미국 템플대학교 타일러 미술대학원 졸업

1985-7  University City Art League,  미국 필라델피아

197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2017    메이란 스페이스(윈도우 갤러리)

          감모여재도,  길담서원    

2016    갤러리 담 

         ‘엄마의 정원’, 베짱이 농부네 예술창고, 해남

2015    갤러리3

          통인갤러리

2013    갤러리3

          갤러리담

2012    오뗄두스

2011    심여화랑

2009    像,  목인갤러리 2관

          像,   갤러리담

2007    幻化-Mortal Matrix,  목인갤러리

1995    토아트스페이스

1994    토도랑

1993    무주리조트갤러리

1991    Silence,  금호미술관

1989    像-Portrait,  펜로즈갤러리,  미국 필라델피아


외 그룹전 100여회


● 오픈시간 : 10:30-18:00 (금, 토 19:00까지 연장)

                  일,월 휴관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7길 23(통의동 7-33) 지하1층

● 문의 : 02-730-5322

● 웹사이트 : http://www.artspace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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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얼굴과 사회적 윤리


이선영(미술평론가)


19회 개인전을 위해 근 몇 년간 만들어진 박미화의 작품들은 분명 작가에게나 관객에게 새로운 작품이면서도 마치 발굴된 유물처럼 오래된 시간의 켜를 둘러쓰고 있다. 거기에는 진주조개가 조금씩 커 나가는듯한 시간의 힘이 있다. 그러한 외양들은 작가가 인간사에 반복되는 보편적이고도 근원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 대상이 인간일 때, 이 시간의 흔적들은 상처나 상처가 아무는 시간들, 태어난 존재가 자라고 늙고 종국에는 죽어가는 시간들을 상징하게 된다. 단순 간결한 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뭔가 한 토막씩 모자란 구석이 있는 그것들은 완결된 자족감을 가지지 않아서, 관객은 빠져 있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상상하게 된다. 켜켜이 쌓인 시간성은 불현듯 단층을 드러내며 상상을 촉발시킨다. 그러나 박미화의 작품은 유아독존을 주장하지 않는다. 입체는 물론 평면 작품 또한 그라운드 제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언제나 이미 있는 것으로부터, 그것과의 대화적 관계로 작품을 진행한다. 00

자수 설치, 흙 조각, 평면 회화 작업등이 함께 하는 이번 전시는 다른 재료와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 간의 상호보충이 이루어지는 장(場)이다. 얼핏 어눌해 보이는 작품의 어법은 타자가 끼어들 여지를 두기 위한 여지로 다가온다. 박미화의 작업에서 재료와의 상호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물질은 작가의 계획에 완전히 복종해야 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다. 객체를 제멋대로 하려는 주체의 의지야말로 역사상 수많은 폭력을 야기했던 원천 아닌가. 버려진 합판 위의 그림은 자연에 자연을 더한다. 그것은 그 위에서 무엇이 등장하거나 사라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융통성 있는 화면이 된다. 최근작에서 비중이 높아진 녹색 식물은 좀 더 희망적이다. 이전 전시를 물들었던 먹먹함은 희망을 향한다. 박미화의 작품에서 식물은 원시시대부터 탄생 및 죽음과 관련되었던 다소간 종교적 분위기의 소재임을 드러낸다. 탄생에는 재탄생 또한 포함된다. 박미화에게 가장 강력한 것은 다시 작업하는 삶의 개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잠재된 상태로 있던 씨앗, 또는 나뭇가지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는 일을 말한다. 작가가 지금 어느 시절보다 가까이 하고 있는 대지와 그것의 환유(換喩)인 흙은 재생의 기운을 간직한 잠재태로 다가온다. 바닥에 놓여있거나 서 있는 작품 속 인물들은 죽거나 죽은듯하지만 살아있는 형상들이다. 아이 같은 천진한 필법으로 그려진 얼굴이나 몸 형태는 어린 시절의 낙서장 같다. 그것은 직접적인 언어적 표현보다는 머리와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 더 많은 상황을 은유한다. 철망과 철심으로 지지 된 피에타상은 폐허에서 다시 구축되는 듯한 구조로 마감되었다. 한쪽 날개가 뽑힌 채 바닥을 응시하는 어미 새 또한 아이의 상처에 자신도 상처받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날지 못하는 새는 취약하고 무거운 존재이다. 옷 모양의 동체는 그 크기도 크거니와 갑옷같이 단단한 모양새로 기념비적인 형상을 이룬다. 그러나 그 안이 텅 비어있어 강함 속의 약함, 또는 약함 속의 강함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머리 위에서 식물이 나오는 여인 상반신을 표현한 작품은 스스로를 양분 삼아 자라는 존재, 즉 예술하는 삶의 고통을 사슴의 뿔처럼 내보인다. 

한번 가면 2박 3일, 3박 4일을 머무르는 작업실에서의 일정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가 소중하다. 여기에서는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 및 자신과의 대화만이 있다. 침묵 속 타자와의 대화에는 마치 성(聖)과 속(俗)을 오가는 의례의 행위를 떠오르게 한다. 박미화의 작품은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서 우리 사회 구성원이면 알아볼 수 있는 시사적인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그것들을 보다 근본적인 차원으로 가라앉힌다. 그런 후에 다시 떠올린다. 기억되는 것만이 표현될 가치가 있다. 남성이 아닌 여성 화자(話者)는 전시의 모든 초상들이 작가의 은유임을 암시한다. 작품 속 인물은 자신의 비유이지만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기 안의 타자 또는 타자에 감정이입되는 자신이다.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차원의 죽음을 전시의 한 주제로 삼고 있는 작가에게 타자의 얼굴은 영감이 발산/ 수렴하는 지점으로 다가온다. 얼굴은 죽은 듯 누워있는 개부터 고전적인 피에타상까지 아우른다. 

전시장 한 면 가득한 비문들은 얼굴을 대신하여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회적 차원에 접한 박미화의 작품은 타자에 대한 윤리를 암시하는데, 그 방식은 계몽적이기보다는 심미적, 또는 종교적이다. 그러나 초월적이지는 않고 내재적이다. 그것은 타자의 얼굴로부터 윤리를 암시하는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철학을 떠오르게 한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윤리는 타인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이다. 레비나스에게 타인은 무엇보다도 얼굴로 다가온다. 그것은 그 얼굴의 은총 속에서가 아니라 그 살의 벌거벗음과 비참함 속에서 맞아 들여진 타인이다. 타자와 마주한 주체는 결코 자율적이지 않다. 박미화의 작품이 여러 장르를 아우르면서 설치의 방식을 가지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알맹이인 몸이 빠진 옷의 동체, 날개가 한 짝 뽑힌 새, 한 쌍을 이루지 못하는 사지들, 그리다 만듯한 그림 등은 자족적이지 않다. 그것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것들과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이루며 메시지를 발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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