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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 전시 2022 주제기획 《소란한 여름, 햇살에 기대어 서서》

전시기간 2022-04-27~2022-07-02
전시장소 우민아트센터 전관
전시장주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사북로 164 우민타워 B1 우민아트센터 지도보기
오픈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3-10월 기준)
매주 일요일, 설, 추석 휴관
관람료 무료
기관명 우민아트센터
문의 043-222-0357, 223-0357
웹사이트 www.wuminartcenter.org
후원 우민재단

상세내용

영국의 어느 박물학자는 우울증으로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근교 시골 마을에 가서 자연을 가까이하며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숲길을 걷고 가을에는 낙엽의 곰팡이 냄새와 블루벨의 은은한 향기를 맡았으며, 따사로운 날엔 햇살에 목덜미를 데우고 벌들의 비행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녀의 기록에 담긴 다양한 동식물과 광물의 형태와 질감, 냄새, 그리고 야생의 자연을 가득 채운 공기와 빛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떠올릴 수 없는 어떤 감각인지도 모른다. 곧, 이번 전시는 우리가 잃어버린 생태학적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구 역사의 끝자락에 등장한 단 하나의 종, 인류로 인해 지구가 심각하게 변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통제하고 변형했으며, 기후 변화와 함께 자연은 고유의 활력을 잃어가고, 동식물 서식환경이 변화하면서 생태계 전반적으로 생명체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최근의 재야생화(rewilding) 담론은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 중 하나이다. 지난 20세기의 환경 운동이 봄이 와도 새가 지저귀지 않는 ‘침묵의 봄’의 현실에 대해 말했다면, 재야생화 담론은 자연이 다양한 종들의 목소리가 우거지는 ‘소란한 여름’의 희망에 대해 말한다. 자연을 인간이 염두에 둔 특정한 야생의 상태로 돌리는 것이 아닌, 자연의 자생력을 바탕으로 비-인간과 그들의 서식지 자체의 활력을 회복하도록 함으로써 한 세계의 자연이 더욱 풍부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란한 여름, 햇살에 기대어 서서》는 인류세의 위기 속 종 다양성의 회복과 재야생화를 위한 정치적 차원의 운동과 일상적 실천과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감수성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하며, 생태학적 감수성의 중요성을 제안한다. 어느 책의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자연계를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당신이 몸담고 살게 될 세계가 결정된다”라고 말한다. 소란한 여름을 불러오기 위해, 인류에게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알아채고 생태환경에 관심을 가지며 지구상 다른 (비)생물 존재들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생태학적 감수성과 리터러시(literacy)가 필요하다. ‘소란한 여름’은 이러한 감각을 바탕으로 인류가 생명권력을 휘둘렀던 자연, 생물과 미생물 등을 포함한 비-인간(non-human)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들여다보고 존중할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전시는 예술을 통해 알아챔의 기술(art of noticing)을 미학적으로 경험하는 자리로 마련된다. 한 세계를 그것의 고유한 리듬과 스케일에 따라 감각하고,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상호 얽힘을 발견하며 종간 경계를 가로넘기를 시도하는 등 생태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작가 엄유정, 유영진, 정혜정, 조은지의 작품을 소개한다.  


엄유정은 주변 환경의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회화로 옮겨낼 방법을 고민하며 다양한 시간성을 가진 자연의존재들을 관찰하고 이미지를 수집해왔다. 식물 하나하나는 단일한 종(種)의 이름 아래 환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게 존재한다. 각각의 개체는 미묘하게 다른 질감과 색감을 띠고 서로 다른 방향과 크기로 성장하며 소멸한다. 작가는 고요하면서도 소란한 식물의 세계를 관조하고 식물들이 품은 다채로운 형태와 선, 부서지듯 유연하게 흔들리는 움직임, 그 속에 존재하는 단단한 리듬을 발견한다. <VOLUME Leaves>(2019)가 식물들이 이루는 공간의 부피감과 깊이감을 드러낸다면, <CIRCLE Leaves>(2019)는 둥근 잎 식물들의 매끄럽지 않은 윤곽선과 잎의 단면을 단색의 배경에 기대어 보여준다. 작가는 식물을 서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식물의 모양에서 발견한 본질을 잘 담아내는 것과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두 가지 과제를 함께 고민한 뒤 색과 재료, 붓질하는 방향과 속도를 정하여 그 세계의 고유의 모양과 리듬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유영진의 <캄브리아기 대폭발>(2018)은 1970-8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다세대 주택 벽돌 건물에 덧대어진 건축 부속물이 이루는 풍경을 바라보며 도시 거주지에 미지의 생명체의 출현을 상상하며 시작된 작업이다. 이 인공물들의 비정형의 형태, 물컹거리거나 삐죽한 모양, 시간이 지나며 모양과 색이 변화하는 모습은 마치 미지의 외계 생명체나 고대 생물을 닮았다. 이후 그는 이 정체불명의 물질을 사진으로 찍거나 그린 뒤 세울렌시스(Seulensis)로 시작하는 학명을 붙여 도감을 만들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에서 일상의 건축 부속물들은 인간에 의해 이용되었다가 버려지는 평범한 사물 또는 우리 삶의 공간이 변화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주변적 징후로 다뤄지지 않는다. 작가는 일상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모종의 생명력을 감지하며 상상력을 발동하여 오래된 건축 부속물에 ‘도시에 출현한 미지의 생명체’라는 내러티브를 부여한다. 이 내러티브 속에서 사물은 모종의 생명력을 갖추며 행위하는 비-인간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조은지는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비생물, 우리와 그들, 이곳과 저곳처럼 존재 사이에 그어진 경계를 해체하고 재설정한다. 작가는 2018년부터 문어를 소재로 다중 정체성과 종(種)간 경계를 넘는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나의 쌍동이 문어 OCTO-8을 위한 노래>(2020)에서 퍼포머는 바다로 들어가 노래를 부르고 피리 연주를 하거나, 연체동물 문어처럼 팔다리를 움직여 춤을 춘다. 문어를 향한 이 ‘몸의 말 걸기’는 인간이 발 딛고 살아가던 땅에서 문어가 살아가는 바다로 들어가면서, 문어가 살아가는 바다의 물살을 견뎌가면서, 유연한 문어의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진행된다. 이 소통의 시도는 인간의 신체로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고 인간의 영역에도 문어의 영역에도 속하지 않은 변형된, 혼종의 언어로 진행된다. 그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건네지는 이 노래는 인간은 인간이기를 잊고 문어되기를 지향하고 문어가 또다른 자아로 인간의 노래를 감각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품어야 시작될 수 있다. 이는 다른 종과 나의 경계를 계속해서 인식하고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해야 비로소 가능한 ‘몸과 마음의 대화’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정혜정은 그동안 우리 삶의 공간에 존재하지만 주변으로 밀려난 다양한 비-인간 존재에 주목하며 작업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끝섬>(2021)과 <액체인간>(2021)은 물을 매개로 거시적, 미시적 차원에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서로 얽혀 있는, 공생(symbiosis)의 관계에 있음을 말한다. <끝섬>은 멸종된 동물들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된 작업으로, 영상에는 작가(인간)의 신체와 멸종 동물의 신체와 이종 결합된 낯선 존재들이 등장한다. 관람자는 이미 멸종해버린 존재의 관점에서 그들의 세계와 정서를 경험해볼 수 있다. 조지 바이런(George Byron)은 “인간은 대지에 멸망의 자국을 남긴다. 그러나 인간의 지배는 바다 앞에서 끝이 난다.”라고 말했다. 인간과 멸종 동물의 공유지 끝섬은 바다로 잠기며 끝이 난다. <끝섬>이 다른 생물종의 관점에서 세계를 경험케 한다면, <액체인간>에서 관람자는 신체의 내부로 들어가 마치 몸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 혹은 장기 중 하나가 된 것처럼 몸 속 공간을 유영하며 그 안의 다양한 미시적 존재들을 감각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몸도 풍부한 다양성을 가진 하나의 생태계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신체는 완결되어 있지 않으며 인체 내의 다양한 생물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그곳은 끝섬이 그러했듯 다종다양한 존재들이 공존하는 생태계와도 같다. <끝섬>과 <액체인간>은 거시적, 미시적 차원에서 나와 다른 존재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다종다양한 존재가 얽혀 공존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이번 전시는 생태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지구에 인간과 함께 존재하는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을 다룬 작업을 소개한다. 식물과 동물, 생물과 미생물, 인간과 동물 등 다양한 층위의 존재들이 작업에 등장한다. 각 존재들은 오랜 시간 작가가 대상과 대면하는 과정을 거쳐 회화로 재현되거나 미지의 생명체를 상상하는 계기가 되고, 다른 존재 되어보기의 출발점이 되는 한편 인간과 이종 결합되며 공생의 희망을 말하기도 한다. 이 모든 작업에서 인간은 중심에서 빗겨서 있다. 이 세상의 중심에서 빗겨서서 주변을 둘러보며 주변의 존재들과 평평한 관계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서로 기대어 햇살에 몸을 내맡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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