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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 전시 [리각미술관] 범진용 개인전, 잠 못 들고 展

전시기간 ~2019-08-31
전시장소
전시장주소 충청남도 지도보기
오픈시간
관람료
기관명 리각미술관
문의
웹사이트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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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시 명 : 범진용 개인전, 잠 못 들고 展

● 전시기간 : 2019 06 13 (목) - 2019 08 12 (월)

● 전시장소 : 리각미술관

● 작가소개 : 범진용

● 오픈시간 : am 11:00 - pm 06:00 (입장마감 pm 05:30)

● 관람요금 : 성인 3,000원 / 학생 2,000원

● 주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태조산길 245 (유량동) 리각미술관

● 문의 : 리각미술관 학예팀 070-4111-3463

● 웹사이트 : http://www.ligakmuseum.co.kr


꿈속의 풍경, 풍경 속의 꿈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지금, 우리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인가? 도시를 벗어나 휴식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에게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자연의 풍경은 관광 상품화 되어있다. 콘크리트 빌딩숲 사이, 공터의 자연은 공원으로 구획되어 일상을 환기하며 도심의 열기를 식힌다. 그러나 이 같은 손길이 닿지 않아 방치된 자연은 도시인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살인의 추억』으로 알려진 경기도 화성 일대는 지난 수십 년간 미해결 살인 사건들이 발생했거나 시신이 유기된 장소로 알려져 있다. 10여명의 부녀자를 유인해 살해한 희대의 범죄자 강호순이 그의 상상을 실현한 곳도 도농복합지역의 외곽에 버려진 공터와 도랑, 습지가 있는 39번 국도와 42번 국도 인근이었다. 버려진 자연은 이처럼 범죄적 상상력의 기반이 되거나 공포의 대상이다. 작가 범진용이 대학을 다니고 작업 활동을 해온 인천 지역은 수십 년 동안, 개간사업과 도시계획으로 본래의 생태계가 처참히 파괴된 곳이다. 이곳 연안의 갯벌지대는 공단부지로 변모하였고, 아시아 최대의 국제자유무역도시를 표방한 송도신도시에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줄 세워졌다. 범진용은 이 지역 인근에 방치되고 버려진 땅의 표정을 담아왔다.


범진용의 2017년 作, 강물에 떠내려 온 나무 그루터기들이 뒤엉켜 있는 <풍경>은 42개의 작은 캔버스로 나눠진 너비가 661㎝에 높이가 410㎝에 이르는 대작이다. 거대한 역사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풍경화는 습지에 부유하고 있는 보잘 것 없는 나뭇가지, 마른 건초, 지푸라기 덩어리가 쌓여 생긴 퇴적물의 단면을 포착한 것이다. 이 그림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보지 않으면 작품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크다. 때문에 작품을 처음 마주하게 되면, 전체보다 부분에 먼저 눈이 간다. 확대된 부분들을 살펴보면, 이 작품은 단순히 자연을 묘사한 풍경화가 아니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유기생명체의 형상이나 구체화할 수 없는 꿈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풍경 속에 나타나는 이와 같은 초현실적 환상은 우리 눈이 만들어 내는 착각일 수도 있지만, 범진용의 이전 작업들을 보면 이 풍경들이 무언가 미스터리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애초부터 작가가 선택한 풍경이나 장소가 심리적 상태를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작업의 연대기적 변화과정에서 유추된 것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의 형식적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크게 세 단계 정도로 나뉜다. 작가는 2012년부터 자신의 꿈 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작가는, 작가 내면의 풍경이자 자화상으로 심리의 흐름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그렸다. 그의 꿈에는 작가 자신으로 보이는 인물과 여러 주변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림자 소년, 문어 소녀와 그 외의 여러 군중들이다. 이 캐릭터들은 여러 가지 상황의 꿈속 이야기들을 재현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며 불안하고 나약한 존재들로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정하다. 이들은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로 서로 외면하며 그 모든 것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이들을 둘러싼 심리적인 공포와 두려움을 표현한 작품들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풍경화 작업은 2015년부터 시작된다. 꿈과 현실의 이미지가 조합된 이 생경한 풍경은 앞의 캐릭터들이 살아가는 공간 환경이자 심리적 배경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2016년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인물들이 사라지고 순전히 자연물이나 풍경만 남은 그림을 그리게 되는 시기이다. 범진용이 본격적으로 풍경에 몰입하게 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공원의 황폐한 풍경과 방치된 도심 하천이나 개발의 외곽 지대에 위치한 야산 등의 풍경을 그렸는데, 이 공간들은 실제 작가가 생활하는 일상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의 꿈에 등장하는 풍경들이다.


작가의 꿈에 관한 집착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범진용은 총 3,600㎝에 달하는 네 개의 두루마리 종이 위에 <꿈 일기>를 그렸다. 이 드로잉에는 형태가 불분명한 얼굴, 말이나 동물의 형상, 바퀴가 날린 일상 사물, 유럽식 성곽의 풍경, 추상적인 패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등장한다. 네 개의 서로 다른 트랙의 드로잉이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이 작품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보거나 바닥에 놓고 두루마리를 풀어가면서 볼 수 있다. 두루마리 종이 위에 펼쳐진 이미지들의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지만, 이 드로잉은 작가가 경험한 어떤 이야기들의 순차적 나열임이 분명하다. 파편적인 이미지들은 불분명하고 때로는 뭉뚱그려진다. 이처럼 꿈의 기억을 재현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매 순간 실패하게 된다. 꿈의 기억은 언어화 되지 못하고 완전한 이미지에도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꿈을 기록한다는 작가의 당초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것을 재조합해서 하나의 서사를 구성하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다. 우리가 극장의 스크린 앞에서 영화가 흘러가는 것을 바라본다면, 그의 그림 앞에서는 눈을 움직여가며 이미지들의 서사를 엮어내야 한다. 이 두루마리 드로잉은 2014년 830㎝ 크기의 거대 작품인 <꿈 일기 드로잉>으로 이어지는데, 그는 앞의 그림에서 등장했던 이미지들을 중첩해서 한 화면 위에 겹쳐 그렸다. 목탄으로 그려진 이 그림에는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한 흔적이 남아 있다.


범진용의 꿈 일기 작업이 현실 공간에 투영된 것은 2013년 <작업실>을 그린 작품들에서부터 시작된다. 초현실주의자의 꿈 그림처럼 흘러내리는 인물이 함께 그려진 이 작업실 풍경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 작가가 몸담고 있었던 공간의 기억과 상상이 중첩된 것이다. 이 공간에서 꿈과 현실은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작가는 캔버스 화면 앞에서 앉은 채로 꿈꾸는 사람이 되었다. 작업실 공간의 구석에서는 괴물처럼 생긴 유기체의 내장기관들이 꿈틀거린다. 작가의 증언대로 이 그림들은 현실에서 차마 풀지 못한 가슴앓이의 뒤섞임, 천방지축 꿈의 풍경을 드러낸 것이다. 2014년에는 이름 모를 두상이 녹아내리는 뒤로 검푸른 숲이 있는 풍경 <Run>,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이미지들이 나타났단 사라지는 찰나 같은 <숲>, 불타는 숲과 파괴된 열차의 이미지 뒤로 전쟁 역사화처럼 암울하고 장엄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조용한 방>을 그렸는데, 이 그림들은 작가가 생각 끝에 묵히다 곪은 트라우마, 불안, 공포가 투영된 그림들이다.


2015년에 그려진 <풍경>부터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이 사라지고 작업실 바깥의 자연풍경이 주를 이룬다. 물론 간간히 이 풍경들 사이에서 인물이 등장하거나 엉겅퀴 풀이나 나무숲 사이에서 어떤 어른거리는 형상들이 나타난다.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인물들 때문에 이 그림들은 풍경으로 보이기보다는 어떤 사건의 한 장면들처럼 보인다.

가로 580㎝ 대형작품인 <숲>에 이르면 이러한 형상들이 사라지고 숲의 싱그러운 생명력을 드러내는 활기찬 필치들로 이루어진 화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붓질은 축축하고 두터운 갯벌의 질감을 닮았다. 붓질이 풀숲이나 나무 그루터기, 얼기설기 뒤엉킨 지푸라기 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때마다 자연의 형상 속에 숨어있는 환각들이 유기체의 움직임처럼 살아 꿈틀거린다. 때문에 이 그림들에서 자연은 추상적인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색 면이나 패턴으로 읽힌다.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인간이 낙원으로부터 추방된 이후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쳐 죽였다. 아벨이 죽은 땅은 늘 엉겅퀴를 생산했다. 이 사건 이후로 인간은 자연이 생산해 내는 이 엉겅퀴와 싸우며 땀을 흘려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 이야기의 신화적 연원을 따르지 않는다면, 땅에 대한 저주는 신과의 약속을 어긴 인간에게 주어진 벌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원초적인 얼굴을 마주할 때, 인간이 느끼는 공포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지난 세기, 전 세계에서 발생한 산업화, 도시화는 이 자연들에 대한 무참한 학살과 정복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현 세기 인류가 직면한 환경 위기 또한, 인간의 통제와 지배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범진용은 도시 외곽 지역, 개발이 멈춘 땅에서 자란 엉겅퀴들에서 자연신의 공포와 두려움을 본다. 이 이미지들은 꿈과 현실을 오가며 삶에 흔적을 남겼다. 이 흔적을 따라온 여정이 기록된 그의 거대한 풍경은 기념비적인 얼굴을 하고 우리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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